[이원준] 메르스 3차 감염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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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입니다.
요즘 메르스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지난 주 부산에서 국어콘서트를 할 때 한 분이 기침을 하셨어요.
5초간 정적이 흐르고 수 백명의 시선이 그 분께 몰렸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스 바이러스는 호흡기관지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기침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MERS-CoV which infects the deeper areas of the lung, is not coughed out.
(네이처 기사 중)
강연 중에 이 말을 할까말까 하다가 분위기가 더 싸해질까봐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 글을 쓰네요.
메르스 3차 감염은 논리나 국어와 상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개념 정의로 인해 생긴 문제라는 점에서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수험생분들이 지나친 걱정으로 학업에 집중을 못할까봐 걱정입니다.
물론 위험은 불확실한 면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유익하고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인지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과학잡지 네이처에 한국의 메르스 사태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http://www.nature.com/news/south-korean-mers-outbreak-is-not-a-global-threat-1.17709
이항대립적으로 보자면 병원과 병원이 아닌 곳은 감염이 가능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삽관이나 석션 등을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 중에 많고 병원이 아닌 곳에서는 바이러스 입자가 공기 중에 많이 없는 것이겠죠. 메르스 바이러스는 호흡기관지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기침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즉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거나 아주 밀접한 접촉을 하지 않는다면 메르스는 전파되지 않습니다. 또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체외에서는 하루밖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MERS mainly spreads in hospitals
Though MERS-CoV is not considered a human virus, there is one place where it sometimes behaves like one: hospitals. In these settings, medical procedures on an undiagnosed patient, for example to aid breathing, can generate aerosols from the lungs that contaminate the area and infect people nearby with the virus. Otherwise, MERS-CoV which infects the deeper areas of the lung, is not coughed out. In this outbreak, the source developed flu-like symptoms and a cough on 11 May, but was only diagnosed and isolated on 20 May. This created a time window during which no special infection-control precautions were taken, which explains how he transmitted the infection. That he was treated at four different health facilities before he was diagnosed multiplied the risk of infection.
만일 병원 밖 감염이 발견된다면 경고음이 울리는 셈이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병원 밖 감염은 없었다고 합니다.
Were cases springing up around South Korea outside of hospital settings, that would be cause for alarm — but they are not.
WHO 홈페이지에서도 다음과 같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아직까지는 3차 감염이 보고된 바 없다는 것이 현재 WHO의 입장입니다.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기사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오보를 쏟아내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잡을 수도 없구요. 최근 각종 언론에서는 메르스 3차 감염이 일어났다고 난리인데 기자들이 '3차 감염'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3차 감염이란 순서에 대한 개념이 아닙니다. 병원 내에서 감염이 5명까지 넘어갔다 하더라도 그것을 3차 감염으로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정부가 4차 감염을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까지 등장하는데 웃긴 일입니다.
1, 2 ,3차 감염은 선후개념이 아니라 대소개념에 해당합니다.
1차 감염은 초발환자,
2차 감염은 병원이나 가정 내 가족이나 의료진의 감염,
3차 감염은 병원이나 가정 밖 지역사회 전파를 말합니다.
대소 관계 | 선후 관계 | |
2차 감염 | 병원이나 가정 내 감염(O) | 두 번째로 전파된 환자(X) |
3차 감염 | 병원이나 가정 밖 감염(O) | 세 번째로 전파된 환자(X) |
즉, 병원 내에서 감염된 것은 3차가 아니라 2차 감염에 해당합니다. 병원이나 가정 밖에서 감염되어야 3차 감염이 됩니다.
2차 감염과 3차 감염을 나누는 이유는 특수한 환경이나 밀접한 접촉이 없어도 감염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메르스 바이러스는 3차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전세계적으로도 3차 감염은 발생한 바가 없습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주로 감염되고 가정 내 감염도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기침으로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외국에서는 병원 내에서 5명까지 추가 감염자가 발생한 사례가 있지만 병원 내 감염이기 때문에 3차 감염자로 분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3차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웃긴 일입니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라도 사스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해서 3차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돌아왔던 저도 1달간 자가격리 당했었어요. 그 후 인간관계가 정리되더라구요. 만나주는 사람과 만나주지 않는 사람으로요.. 전염성이 강한 사스 바이러스와 달리 메르스 바이러스는 3차 감염자가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만일 추가 감염자를 3차 감염자라고 부른다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벌써 3차 감염자까지 나왔었겠죠.
아래 뉴스를 살펴보면 의사들은 '3차 감염'을 '지역사회 전파' 라고 정의하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는 3차 감염자가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3차 감염, 정확하게 말한다면 sustained community infection(지역사회 전파), 즉 유지되고 있는 그러니까 지역사회 전파가 보고된 사례는 없다. 3차 감염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지역사회 이전에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1차 초발환자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2차에서 끊는 것이 목표다. 3차 감염이 없게끔 전사적으로 달려들어 최대한의 조치를 하겠다."(권 국장)
"지금까지 나온 우리나라 감염자들 모두가 2차 감염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지난 15일자 '위기평가서'에 따르면 메르스 바이러스가 2차 감염에서 3차 감염, 그리고 지역사회로의 감염을 일으킨 적이 없다고 나와 있다."(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걱정되는 것은 2차 감염 격리자들이 계속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켜 격리 대상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지역사회로 번질 우려를 할 단계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있다. 3차 감염 환자가 발견되면 그때부터 범위가 커질 것 같다. 어떤 신종 감염병이든 환자를 빨리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손준성 교수)
"메르스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아 감염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3차 감염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중국으로 출국한 감염환자가 당국의 통제에 벗어나 무방비로 노출됐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우려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한림의대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530_0013696768&cID=10202&pID=10200)
즉,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에는 병원 밖 감염, 즉 3차 감염자가 없습니다.
의사들이 지역사회 감염자, 즉 3차 감염자가 없다고 말해도 기자들은 3차 감염자 발생이라고 막 기사를 송고해 버립니다. 처음에 당국과 의사들이 '3차 감염이 발생하면 위험하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기자들 입장에서는 '추가 감염자 발생'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3차 감염자 발생'이라고 송고했을 때, 더 센 제목이라서 데스크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때 의사들이 엄청 화를 내면서 "헛소리 마~!"라고 소리 질렀다면 금방 사라졌을텐데 의사들은 평소에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얌전하게 살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말을 다듬어야 할 국립국어원 사람들도 과학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어휘가 사용될 때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문이과를 나눠 교육한 폐해인가...) 그래서 이제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서 그야말로 '괴담'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이제 와서 지역사회 전파가 없다고 말하면 기자들은 3차 감염자는 있지만 지역사회 감염자는 없다고 변명하면서 낙관론을 펼친다고 비판해 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3차 감염자가 없는데 왜 한국에서만 3차 감염자가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이러스 변이설', '한국인 유전자 취약설' 등의 소설을 써 버립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아세요? 이항대립적으로 인간은 섹스를 하고 바이러스는 섹스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유전적으로 다양하고 바이러스는 유전적으로 다양하지 않아요. 메르스 바이러스 변이가 없다는 것은 밝혀졌고 (바이러스 유전자 99.55% 일치) 한국인 유전자 취약설은 늘 그렇듯이 헛소리입니다. 개인 간에 유전적 다형성이 얼마나 큰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립니까?
이번 사태로 인해 '3차 감염'은 '2차 피해'처럼 말의 의미가 오염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대중들은 '3차 감염'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이 말을 사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4차 감염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요. 뉴스를 잘 읽어보세요. 4차 감염이라는 단어는 주로 기자들이 씁니다. 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설명하기 위해 4차 감염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4차 감염이라는 말은 기자들의 창작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4차 감염'이라는 단어를 다들 원래 있던 단어인 양 사용하는 굉장히 기괴하고 신기한 상황입니다. 네이버에 기간 설정을 해서 검색해보니, 2015년 5월 26일 이전에는 4차 감염이라는 단어가 네이버 뉴스에서 검색되지 않습니다.
3차 감염을 둘러싼 혼란은 사람들이 선후관계와 대소관계를 혼동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개념 범주를 살펴보면 기본범주로 양,질,양태,관계가 있고 관계로는 선후관계와 대소관계가 있습니다.
예전에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여수 기름 유출사고 당시 '어민이 2차 피해자'라는 발언을 했다가 물러나게 된 것도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가 대소개념이 아니라 선후 개념이라는 것을 기자들이 몰랐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윤진숙 장관이 유조선-송유관이 충돌해서 기름이 흘렀을 때 2차 피해자인 어민들을 돕겠다고 했는데 이때 2차 피해란 두 번째로 발생한 피해를 의미했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어민들이 입은 피해가 '작다'라고 폄하했다며 공격했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번 발생하고 나면 '2차 피해'라는 말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됩니다.
대소 관계 | 선후 관계 | |
1차 피해 | 큰 피해( X ) | 처음 입은 피해 (O) |
2차 피해 | 작은 피해 (X) | 그 다음에 입은 피해 (O) |
대한민국 국어교육에 개혁이 필요한 것도 보다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합리적인 목소리보다 억지 논리가 앞서는 이러한 상황이 많이 걱정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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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해 5
발표해애애애ㅐ!!!!!!!빼애애앵ㅇ애애애애ㅐㅐ애액!!!!!!!!
그렇군요..(끝)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원준 님 치전 나오시지 않았나 ㅋㅋ 그래서 이런 글도 쓰실 수 있는 듯
서울대 중문학사 서울대 치의전 졸업. 넘사급 스펙이죠.
역시 비문학은 이원준!
이걸로 오르비에서 선동하는 놈들 다 아닥 했으면 속시원하게 정리해주시네.bb
선동이라기보다도... 뭐어쨌든 다행이네요 이원준쌤 속시원한 정보 감사합니다~~
역시 명쾌하시네요^^
최근 읽은 글 중에서 제일
좋은글 인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와 정말 좋은글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일상 언어를 논리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똑같은 단어라도, 의사가 사용할 때와 언론인이 사용할 때, 그리고 일반 대중이 사용할 때의 의미는 그 결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논리학자가 2차 피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논리적 함의만 고려해도 되지만, 정치인(혹은 행정가)이 그 단어를 논리적 함의만을 고려하여 사용했다면 당연히 정치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인간은 이성의 논리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논리로도 살기 때문입니다. 편협한 강단 철학자가 생활인이 되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언어를 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다는 말은 맞긴 하지만..왜 굳이 여기에다 그런 내용의 글을 남기시는지요 이원준님께서 남기신 글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지을 수 없지 않을까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논리적 함의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뉘앙스, 느낌등도 고려하는 것이
대중들을 상대하는 정치인의 자세로서 더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이 단어가 감정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고려못한 경우
정치에 손을 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단어를 논리적으로 옳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자들의 선동과
이로 인한 대중들의 잘못된 이해로 인하여 정치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은
단어의 감정적인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정치인의 잘못이 아니라
합리적이지 못한 기자들과 대중들의 잘못이죠
굳이 정치인이 잘못한 점을 지적하려 한다면
'대다수의 기자와 국민들이 비합리적인 상태인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어의 논리적 뜻만 생각하지 말고 감정적인 느낌도 생각했어야지!'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겠네요
... 몽주니어 드립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범주판단 이항대립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샘 ㅋㅋ 좋은글 감사합니다
역시 언어이해 이원준!
선생님블로그에서도 본 글인데,
여기서도 보네요.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인강수강생인데,글에서
이항관계랑 12범주를 보고
바지에 지렸습니다;;
실은 저는 선생님 인강듣기전에 미리
바지몇벌을 준비해놓고 듣습니다만..
역시 국어는 이원준!
솔직히 이건 이론적인거고..... 실제로는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모두가 다 확률로만 나타내나?? 그건 아니라고 봄.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