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요즘. 대학생-1]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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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요즘. 대학생-1
-어떻게 살 것 인가
<현재 대학생인 제 고민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정해서 글을 끄적여봅니다>
나는 생각이 많다. 그래서 행동할 시기에 고민하다 기회를 놓친 적도 있다.
그렇다고 고민할 시간에 일단 무어라도 해보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깊은 고민 그 자체는 행동에 준하는 필수 요소이다.
행동 없는 고민은 공상이고 고민 없는 행동은 맹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동 대신 고민이 늘어져 후회하는 것이 있다. 대입 재수이다.
고민의 주제는 재수를 할까 말까는 아니었다.
고민은 스무 살이 되던 나는 대학생이 되기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어른이 되기를 유보하고
학벌로나마 열등감을 채워볼까.
약간의 특권으로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수능을 세 번 봤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을 여러 번 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도피였다.
스무 살. 사춘기에서 벗어나지도 못 한 나는 사회에 나가기 두려워 재수를 선택했다.
재수생활은 3평짜리 독서실에서 EBS와 수능 문제를 푸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아무리 시험문제들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늘 권태로웠고 모의고사 점수가 올라도 내 마음속 빈 곳은 채워지지 않았다.
또한 온종일을 책이랑 씨름하다 보면 세상과 괴리되었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행복하던 불행하던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존재했다.
여차저차 수험생활은 끝나고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가고 싶었던 학과 중 차선이었지만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와 다르게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배우리라 믿었다.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기숙사에 들어가며 책 두 권을 챙겼다.
그중 하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고
다른 하나는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챙긴 이유는 하나였다.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는 나와 상당히 다른 존재라는 이유 때문이다.
생각과 고민에 짓눌려 살던 나와는 달리 조르바는 행동한다.
각지를 유랑하며 무작정 여행하고, 길가던 사람과 동행을 요청한다.
즉흥적으로 술자리에 끼고 축제를 벌인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여자를 만나며 산다.
돈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 번다. 그러나 삶의 진중함을 모를 것 같은 조르바도
때로는 약자를 위해 강자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의 삶에서도 고통과 불행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그의 발을 묶지는 못 한다.
누군가가 조르바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물었다면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포도주를 한 잔 따라주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챙긴 이유는 제목 그 자체에 있다.
대학 새내기인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인생의 방향성을 찾기에 살아온 시간이 부족한 나는 먼저 고민한 선배의 조언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무어라 대답했을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장관까지 한 분인데 조르바처럼 포도주만 따라주면 '
멋'은 있어 보여도 '지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책을 집필하며
자신의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내 삶을 지배한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았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는 스스로를 쉰다섯 살 먹은 중년 남자로 칭하고,
성년이 된 후 인생의 절반을 운동(movement)과 글쓰기 사이에서,
나머지 절반을 정치와 글쓰기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성찰을 계기로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는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나름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고 후회 없이 죽는 것이 자신의 희망이라 말한다.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출간하며 인생의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글쓰기로 돌아간다고 선언한다.
정치적 견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유시민 작가이지만
그의 글쓰기와 말하기 능력, 역사 및 경제적 지식,
논리성과 치열한 삶의 고민들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리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유시민 작가의 정치적 견해에는 반신반의할 때도 있지만
그의 글은 거의 다 좋아한다. 세 번은 읽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명료한 서술을 통해 삶의 실존적 의문에 대해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라고 답변한다.
포도주를 한 잔 따라줄 것 같은 조르바보다는 총체적인 답변이다.
하지만 타인의 조언은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하지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이 있다.
결국,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을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본인 몫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답을 내리기 위해 '어떻게 살 것 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우선 던진다.
내가 살아온 궤적에는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을까?
이를 위해 스물다섯 청년의 짧은 삶을 반추한다.
대학 입학 이전까지 나의 삶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무엇이 있는지
자문해 본다면 성실성이었다. 그냥 착실하게 시키는 대로 살았다.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하라는 거 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주체성 없는 삶이라 부를 수도 있다.
사실 대학 입학까지도 주체적 결정으로 보기 힘들다.
평범하고 개성 없는 대한민국 수험생인 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을 갔다.
이외의 선택지는 사회구조상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하기에 'Why'에 대한 고민 없이 입학했다.
이는 사회의 압력에 무릎 꿇거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시야가 좁았기에 그 길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대학을 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리라 믿었다.
대학생의 첫 기억은 이렇다.
백화점에서 엄마와 옷을 사고 있던 나는 22살 2월에 처음으로 대학 입학을 확인했다.
정시 1차 추가합격이었다. 엄마는 나보다 합격 사실을 알고는 더 좋아하셨고
한턱을 쏘겠다며 회전 초밥집에 데려갔다.
가격을 확인하고 덜덜 떨며 접시를 집지 못 한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금색의 접시를 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셨다.
그렇게 나는 백수에서 대학생이 되었다.
며칠 뒤에는 대학교 OT(Orientation)에 참여했다.
정적인 삶에 익숙하던 나에게 대학 OT는 상당히 낯설었다.
학교 소개와 학과 소개. 그리고 동아리 소개를 듣고, FM이라는 괴상한(?)
자기소개도 법도 배웠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학생회장님의 ‘권주사’와 함께
다 같이 소주잔을 비웠다. 계속 비웠다. 앞으로는 많은 시간을 공유할 이들이지만,
지금은 낯선 그들과 낯선 공간에서 연거푸 잔을 비웠다.
잔을 계속 비우다 보니 속도 비우게 되는 동기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OT는 끝났다. 나는 평범한 대학 새내기들이 거칠 수 있는 과정을 겪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설어하고, 바보짓하고, 술 마셨다.
그 안에서 추상적인 나의 길을 찾을 능력이 생겼을까?
내가 대학에서 기대하는 배움을 얻을 기회가 생겼을까? 아닌 것 같다.
유년기의 삶에서는 대학에만 가면 대부분의 것들이 결정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대학생의 삶은 결정된 것은 없고
자유 앞에 덩그러니 놓인 존재였다.
고3, 재수, 삼수. 남들보다 길었던 대입 준비를 끝나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13년도에 대학교 1학년이 되며 느꼈던 것은
앞으로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뿐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며 비어버린 내면의 빈 공간은 대학에 대한 환상이나 낭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그저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따라주는 술잔이나 받아 홀짝홀짝 마실 뿐, 대학에서 내 삶에 중요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신입생 시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게다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거대한 암흑 속에 갇혀있었다.
그래서 한 학기 정도는 따라주는 술잔이나 비우고 방에서 책이나 읽어댔다.
그리고 가끔 생각을 정리하는 쪽글이나 쓰며 지냈다.
그러다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신입생 시절, 나의 비어버린 내면은 사실 빈 공간으로 채워져 있던 것이 아니라
대학생활에 대한 ‘무지’로 채워져 있었다.
대학생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과는 다르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의 마인드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들 시켜서 하는 것들이나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겪고, 찾아봐야 했다.
그래서 책은 계속 읽으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새로운 일들을 해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봤다. 교육봉사단체에서 새터민 학생들도 가르쳐보고,
계절학기 때 우연히 정보를 얻은 인문학과 경영학을 배운다는 교육 단체에
무작정 메일을 보내 뒤늦게 입학허가를 받기도 하였다.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클래식을 배우려고 동아리에 들어갔던 적도 있었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나 길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길을 묻고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남은 것은 의문뿐
물론 이런 과정들은 실수 투성이었다.
그 속에서 불완전하고 때로는 구제불능의 자기 자신과 만나기도 하였으며
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존재인 걸 어찌하리’라는 생각뿐 이었다.
또한 방황의 과정에서 겪은 많은 직간접 경험과 새로운 타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혼란 속으로 던져 넣었다. 상대적으로 차이점을 적었던 혹은 드러나지 않았던
중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대학생 이후에 만났던 타인들과 세상은
나 자신 혹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런 생각이 깊어 울적할 때는 나와 타인의 공통점은 외형뿐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독할 정도로 관심사, 가치관, 행동양식이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가끔은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아예 왜곡된 세상인가?’
할 정도로 세상은 나의 예측을 빗나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또 답변이 무기력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이나 타인에 있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적었고 최악의 것들은 비판하되
나머지 것들은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주장이나 남 탓만 하다가는 사실 내가 틀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나’로 돌아왔다.
쉽지 않았다. 나에서 타인과 세상으로 그리고 다시 나로.
그렇게 다시 나로 관심사가 돌아왔지만 남은 것은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주인이 됩시다!
타인이 나를 통제하게 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삽시다!’라고 외치는 세상 속에,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겠는데?
현실적인 요건을 고려하면 개인은 결국 세상과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 뿐이었다.
결국에는 생각에 지쳤다. 어떻게 살 것 인가. 나의 제2의 사춘기적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몰라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랑 행동할수록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생각만 드는 것은
도대체 무슨 차이일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내린 잠정 결론은 어차피 내가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면
나는 계속 여러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도 있고 원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때로는 내가 원하지만 할 수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원하지 않지만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삶은 정녕 B와 D사이의 C. Birth와 Death사이의 Choice일까?
진로 선택, 살아가는 이유,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
혹은 무언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것은 있는가.
이러한 현실적, 혹은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 나는 계속 새로운 생각을 할 것이고
가능한 행동을 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맞는 나의 선택을 하자.
그 선택이 나에게 정말 최선이거나 그것이 완벽한 정답은 아닐 수 있을 지라도,
선택지 중에서는 나은 선택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계속 나는 무언가를 쌓아가며 밑바닥에 있던 나쁜 선택지를
지우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오만인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연명(?) 하다 보면 예술가나 답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고민을 내가 죽기 전엔 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말하지 않았는가.
질문을 잊지 않는 한 그 답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나는 과연 그러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럼에도 일단 좀 더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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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끝없이 드는것같아요. 매순간 모든 선택들은 불확실성을 갖는것 같습니다. 불확실성 속의 '확실한 나'를 찾도록 노력합시다ㅎㅎ
와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글쓴이분 처럼 막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이제 군대를 가야할 시긴데 요즘들어 정말 '나는 누군가' '나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만 계속 머리속에 빙빙 도네요.. 그래서 책도 좀 읽고 여행도 다니고 있는데 아직 답은 못찾았네요... 만약 제가 A4 종이 한장과 펜을 받고 너는 누구이며 왜 살아가는가에 대해 적어보라는 상황에 놓였을때 저는 과연 얼마나 적을수 있을까요.. 마지막 문장이 정말 와 닿네요 ..질문을 잊지않는 한 그 답 속에서 살아가는 너를 보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