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라떼 [572723] · MS 2015 · 쪽지

2015-05-01 22:14:00
조회수 9,320

재수학원 창문 위를 기어올라가던 벌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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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학원 자판기 옆, 닦은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꼬질꼬질한 창 표면을 힘겹게 올라가는 날개 달린 벌레를 보았다.


아래로 여는 작은 창문으로 들어왔나보구나, 유심히 벌레를 쳐다본다.

근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창은 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유리 바로 아래칸에 있다.

그 넓은 창을 아무리 기고 또 기어봤자 벌레는 절대로 창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자신의 발 아래에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걸 벌레는 알고 있었을까.

벌레는 날개를 푸덕거리며 미끄러운 창 면을 열심히 올라간다.

힘겹게 올라다가 중간 쯤에서 또르르 떨어진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또 창 표면위로 올라간다.

발 끝이 미끄러운지 자꾸만 걸려 떨어진다. 그래도 계속 올라간다.

떨어지고, 올라가고, 떨어지고, 올라가고, 떨어지고, 올라가고, 떨어지고.

그런데 나는 벌레가 절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벌레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탈출 시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 십 마리의 자그만한 벌레들이 창틀에 붙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려 든다.

나는 그 벌레들을 유심히 본다. 

그 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벌레를 보았다.

놈은 죽어있었다. 

아마 지쳐서 죽어버린 거겠지. 

자판기 앞을 서성이는 아이들이 그 옆을 살짝 스치기라도 한다면,

놈의 시체는 하릴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겠지.

그러면 청소부 아주머니가 거친 빗자루질을 해대며 그 놈의 시체를 치우겠지.

그리고 나는 살기위해 바둥거리는, 남은 녀석들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저 녀석들도 언젠가는 지쳐 쓰러지겠지. 

그러다 나는 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흐릿하지만 몇몇 놈들이 무언가에 의해 짓눌려 죽은 흔적이 남아있다.

자판기 옆을 스치던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죽인 게 틀림없다.

창틀에 있는 저 녀석들도, 언젠가는 어떤식으로든 저런 개죽음을 당할 게 틀림없다.


나는 그때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들어올려다 보았다.

분명 저 놈들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돈키호테처럼, 이루지 못할 이상을 꿈꾸며 헛고생을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분명, 죽게 될 것이다.

영원히 탈출을 꿈꾸기만 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나는 고민한다.


저렇게 오랜시간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을 거라면

차라리 그놈들을 빨리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펜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 때,

제일 높은 창틀까지 다다른 녀석이 그 높은 곳에서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윗 창틀이 아닌, 바깥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아랫창틀로.

녀석은 뒤집어 진 상태로 날개를 푸드덕거리다 그 무수한 발로 자신의 몸을 지지하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푸드덕 거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건물 밖으로 윙 날아가버렸다.

자유로운 밖으로, 그토록 원하던 밖으로, 가뿐하게 날아가버렸다.


나는 내 어깨까지 펜을 들어올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 왜 나는 저놈들을 아랫창틀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왜 나는 그토록 잔인한 생각을 했던 걸까.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몸을 돌려버렸다. 


내가 몸을 돌린 그 순간까지도,

수 십 마리의 작은 벌레들이 창틀을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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