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는 왜 단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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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체언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로 풀이되며 이에 해당하는 고유어 어휘는 외솔 선생이 제시한 '토(씨)'가 있다. '이, 가, 는, 을, 부터, 만큼' 등의 예가 있으며 이들의 분류는 상당히 까다롭고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 일단 국국원과 학교문법은 조사를 단어로 보는데 그 이유는 다른 형태론적으로 비자립적인 요소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학술적으로 단어의 정의는 완벽하다 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최소 단위로 정의된다. '먹는다’에서 동사의 어간 ‘먹-’이나 어미 ‘-는다’는 독립적으로 쓰이지 못하므로 단어가 아니다. 반면에 '오르비'나 '손', '시발'과 같은 어휘는 독립적으로 쓰이니 단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사'라는 놈은 위의 정의를 충족할 만할까? 조사는 자립적으로 기능하거나 쓰이지 못한다. 조사는 '-는다'와 같은 어미와 마찬가지로 단독으로 쓰이지 못할뿐더러 체언 뒤에 연결되어 실현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단어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조사는 결합한 체언과 분리해도 체언이 자립성을 유지한다. ‘밥을’을 ‘밥’과 ‘을’로 분리해도 ‘밥’은 여전히 자립적이다.
이러한 점은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과 어미를 분리하면 어간과 어미가 모두 자립성을 잃고 여러 파생어에서 접사를 분리하면 자립성을 잃는 것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는 어미보다는 단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 현행 분류상 단어로 처리된다.
또 접사와 어미를 단어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어미는 분리성과 그에 따른 자립성 여부로 결정되지만 접사는 그 층위가 차이가 있는데 조사와 접사 모두 특정 형태에 붙어 쓰이지만 접사는 선행하는 어기(어근)에 대한 제약이 커 조사처럼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학생은 학생꾸러기(?)
사람은 사람꾸러기(?)
잠은 잠꾸러기
장난은 장난꾸러기
학교는 학교꾸러기(?)
또한 조사는 문장에서 단어의 역할을 결정하는 통사론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접사는 한 단어 안에서 형태론적 기능 즉 단어를 파생하는 기능뿐이다.
즉 조사는 자립할 수 없지만, 조사가 분리되어도 앞말이 자립성을 유지하고 조사의 역할이 단어와 단어의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조사를 '단어'로 처리할 수 있다. 조사를 빼도 자립성이 유지되고 문법적인 층위가 유지되는 것은(조사 빼도 주어나 목적어 유지) '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말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접사는 형태소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역할만 하고 조사처럼 문장에서 큰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문법은 조사를 단어로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사전은 이 분류에 맞추기 위해 단어의 정의를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 정도로 풀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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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심화(학교문법이랑 다르니 신경 쓸 필요 X)
이 최소 자립성을 고려하는 단어의 정의는 '최소 자립성'이라는 성격 때문에 애매할 수 있다. 합성어는 다시 한번 여러 최소 자립 형식으로 나뉠 수 있어 정의를 보완해야 한다. 이때 쓰이는 것이 단어 내부에 휴지(休止)를 두지 않는가 그리고 분리성이 없는가이다. '휴지(休止)'는 pause란 뜻으로 조음을 할 시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멈춤을 의미한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어절과 어절 사이에 일어나는데 한 단어 안에서는 이 휴지를 두지 않는다. '먹다'나 '손톱'은 [먹#따]나 [손#톱]처럼 휴지를 두고 발음하지 않는다. 또 그 사이가 분리되지 않는데 '할아버지'나 '큰아빠'는 형태소를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분리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휴지를 두지 않는다는 얘기는 분리성이 없다는 얘기이니 국어 단어의 정립 기준은 자립성과 분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하자면 단어는 최소의 자립형식이면서 그 내부에 휴지나 분리성을 갖지 않는 단위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정의가 궁색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 깊이 있게 들어가면 골치 아프다.
이러한 정의를 보면 '조사'를 단어로 보는 것은 꽤나 논리적으로 보인다. 어미와 마찬가지로 의존 형태소임은 이견이 없지만 조사는 자립형태소에 결합하고 어미는 의존형태소에 결합하니 분리성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일부 학자는 조사를 영어의 관사나 중국어의 허사 역시 단어로 인정된다는 점을 근거로 삼기도 한다(물론 한국어의 조사가 관사나 허사와 성질이 같은 건 아니지만)
그러나 과거에도 그렇고 여전히 조사를 독립된 품사, 즉 조사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단어의 일부인 어미 또는 접미사로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국어에서 굴절 체계의 존재에 대한 인정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체언의 굴절을 곡용이라 하고 국어의 곡용은 인구어와는 다른데 이는 한국어가 어근에 문법적인 기능을 가진 요소가 붙어 의미가 변화하는 언어인 교착어이기 때문이다. 용언의 활용은 인정되나 체언의 굴절인 곡용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체언+조사를 곡용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견해도 있는데 학교 문법에서는 조사를 따로 독립된 품사로 인정하니 체언의 곡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의 모든 요소를 완전한 의미의 단어로 분석해 내고자 하는 입장에서가 아니고, 단지 문법적인 면을 중시하여 조사를 하나의 독립된 단위로 인정하는 것이 국어문법의 기술에 유익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어미로보다는 조사로 인정하는 쪽으로 점차 기울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 재밌는 견해는 조사도 단어라면 어미 역시 단어로 봐도 큰 문제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걸 분석적 입장이라고 한다. 다만 이는 자립성 및 의미적 독립성을 고려하는 게 아니라 어미가 지니는 문법적 기능에 방점을 찍은 견해이니 학교 문법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일단 이 견해에서는 의존명사나 보조용언이 자립적이지 않지만 문법적 양태를 나타내고 단어로 분류된다는 점을 첫 번째 근거로 둔다. 학교문법에서는 통사론적으로 특정 성분에 의존적이어서 준자립어로 분류하고 그냥 단어로 보는데 '어미'를 이와 같은 경우로 보는 것이다. 다만 '어미'는 활용의 문제이고 준자립어는 통사론적인 문장 형성의 문제이므로 둘을 같은 층위에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본다.
일단 어미의 문법적 기능을 보자면 '철수는 공부를 안 하는 애다'에의 '하는'은 수식의 기능을 하는 전성어미 '-는'이 붙은 것이다. 이 '하는'이 수식하는 것은 '애다'라는 서술어가 아니라 '애'이라는 체언을 수식하는 것이므로 관형어이다. 조사처럼 문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어미 역시 조사처럼 결합하는 대상의 제약이 있고 문법적 기능이 있으며 접사와는 달리 새로운 단어로 파생을 하지 않는다. 접사는 문법적 기능을 나타낸다기보다는(물론 피사동접사 같은 놈이 있긴 하지만) 수식의 양상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고 특정 어근에 대한 제약성이 너무나 심하다. 그러나 어미와 조사는 단어 이상의 단위에 작용할 수도 있고 문법적 기능 역시 존재한다. 기능에 관해 분류하는 것은 '한 단어가 문장 가운데서 다른 단어와 맺는 관계 및 문장 내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눈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미나 조사나 문법적 기능에서는 다소 다르긴 하지만 유사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조사와 어미에 관한 입장은
1) 국국원, 학교문법: 조사는 단어, 근데 어미는 아님(절충적 입장)
2) 분석주의 입장: 기능적 측면에서 보면 조사랑 어미 둘 다 단어임 ㅇㅇ
3) 종합주의 입장: 조사랑 어미 둘 다 단어 아님. 조사를 접사로 보고 걍 곡용을 인정함. 주로 우랄알타이어학 학자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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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만
어떻게 고1이지
바이오쇼크 인피니티 를!
조사를 조사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