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엽 국어] 객관적 상관물(16)
게시글 주소: https://ui.orbi.kr/0004662660
영웅은 죽음에 다다른 고난을 극복한 자이다.
시는 서정 갈래로, 시인은 자신의 관점으로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하면서 정서를 표현한다. 즉,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은 시인이 인식하기 전까지는 화자와 정서적으로 관련이 없는 존재들이나 시인이 인식하는 순간 시적 화자의 정서와 상관성을 맺게 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적 대상에는 사물(자연물, 인공물), 사건, 현상(자연 현상, 사회 현상)이 모두 포함된다. 우선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환기하는 객관적 상관물을 알아보도록 하자.
1.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인 사물이 어떤 식으로든지 시적 화자와 관련을 맺어 시적 화자의 정서나 상황을 드러내는데 기여하게 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객관적인 사물이 어느 특정한 순간 시적 화자와 관련성을 가진 사물이 되었다는 말이다.
객관적 상관물이 제시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① 화자가 처한 상황이나 작품의 분위기를 부각할 수 있는 사물을 제시하는 방식
하이얀 모색(暮色)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단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을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김광균,
위 시에서 ‘파란 역등을 단 한 대의 마차’, ‘산마루 길 위의 전신주’, ‘지나가는 구름 하나’ 등의 사물은 쓸쓸하고 고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어들은 작품 내에서 공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동시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화자가 우수 어린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② 감정이입을 통한 방식
감정이입이란 원래 연극에서 관객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에게 빠져 특정 인물이 체험하며 느끼는 감정을 자신 역시 똑같이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보통 시에서는 화자의 감정을 특정 사물에 투영하고 자신과 동일시하여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嶺)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김소월,
위 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시적 화자의 외로움과 비애를 산새에 감정이입하여 표현하고 있다. 특히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깊은 산에 돌아가고자 하지만 높은 고개에 가로막혀 울고 있는 산새의 모습에 삼수갑산에 돌아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③ 대조를 통한 제시 방식
시적 화자의 처지나 상황과 대조되는 대상을 제시하여 화자의 감정을 촉발시키거나 고조시켜 정서를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뚱어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 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 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 덧없는 가없는 저 눈부신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김지하,
* 답새라: ‘치워 버려라’, ‘없애 버려라’의 뜻
위 시는 억압 상황에 놓인 화자가 감방 창살 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의 흰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새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육체적 괴로움과 절망적 심정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새’는 화자의 처지와 대조되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가진 대상으로 화자의 갇혀 있는 처지와 상황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2. 구체적 형상화
구체적 형상화란 형체를 갖고 있지 않은 대상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내어 실감
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독자에게 선명하고 사실감 있는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주로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구현된다.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김남조,
⇢무형(無形)의 대상인 ‘바람’을 ‘머리채 긴’, ‘투명한 빨래’라는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은총’, ‘섭리’와 같이 우리의 감각으로 파악이 안 되는 추상적인 개념을 ‘돌층계’, ‘자갈밭’ 같이 감각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대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위 시의 화자는 겨울 어느 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나무’와 ‘바람’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긴밀한 관계임을 문득 깨닫는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흔들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바람 역시 나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절대 홀로일 수 없는 존재이며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시상이 확장된다.
cf) 구체적 형상화 ≒ 관념의 구체화
우리는 앞서 ‘구체적 형상화’에 대해 알아보았다. 반복해 말한다면 ‘구체적 형상화’란 구체적이지 않은 대상이나 관념을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하고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관념의 구체화’가 있다. 관념이란 사람의 머릿 속에 나타나는 추상적인 생각을 말한다. 따라서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이다. 이것을 구체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체적 형상화’와 마찬가지로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상을 이용해서 그것에 빗대어 표현할 수도 있다. 즉 비유나 상징의 방법을 사용하여 나타낼 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저어 오오.
-김동명,
위 시에서 보듯 ‘마음’과 같은 추상적 대상을 ‘호수’라는 눈에 보이는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관념의 구체화’이다. 좀 더 추가해 본다면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 선지의 속살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의 관계를 묻는 문제는 빈번하게 출제되는 유형이다.
➊ 자연물을 통해 정서를 환기한다. (2008년도 9월 평가원)
➋ 시적 상황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자연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2010년도 9월 평가원)
➌ ㉤은 ‘슬픈 역사’라는 추상적 관념을 ‘돋혀 있는 비늘’로 표현하여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2010년도 10월 서울교육청)
‘자연물을 통해 정서를 환기한다.’는 말은 자연물을 통해 특정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시의 특정 시어들은 추상적인 정서를 구체화 / 형상화 / 환기 /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따라서 ‘~을 통해 정서를 암시한다.’, ‘~을 통해 정서를 구체화한다.’,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등의 답선지의 표현은 외부 세계를 시인이 주관적으로 수용하여 구체화한 것으로 시의 본질적인 성격상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아이래서 5칸떨이 나오는구나
-
김과외 수험번호 1
김과외에서 수험번호가 나오게 사진을 다시 보내라는데 믿어도 되려나요??
-
지구과학vs정법 0
2학년때 지구과학 했고 성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는 학종 생각중인데...
-
오늘이 끝인가 설마
-
1.미적사탐 2.확통사탐 3.사1과1 누구의 합격사례가 더 많을지
-
에타있는거보니 반수생인데 부럽네 ㅜㅜ
-
잘생남vs의대남 7
잘생남은 전교3등정도 외모 의대는 지사의
-
이정도 어디까지가 적정일까요? 혹시 건국 정치외교학부같은 수학반영비율 높은 과는 좀 힘들까요? ㅠㅠ
-
이매진 월간지 3
메가에 보니까 상상이 있더라구요 근데 뭐가 되게 많던데 이매진이랑 상상N제언매만...
-
힘들다 근데 버거킹보다 100배 나은듯. 버거킹은 시작하고 몸이 아파져서 20일만에 그만둠...
-
오느레 낙지 1
755 -> 655 ㅅㅂ 내일부턴 표본분석한다
-
2026강기분 1
2026강기분 또 듣는거 어케 생각하세요? 강기분 새기분 들었고 고2 2등급입니다
-
갑자기 쏘네
-
있으면 댓글좀
-
가면 ㄹㅇ 영과고애들한테 학점 학살당함? 지금 놀때가 아니라 1학년 과목 공부 미리 해놔야하나
-
나중에 몰릴 가능성 크려나
-
이노래 진짜 좋아함
-
기균 정시 대학 라인 14
기균 서울대 지원 가능할까요? 연대는 국어를 못 봐서 고민 중이에요
-
이왕 여지없이 떨어진 작금에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결심을 품었다면 한계의 한계까지...
-
775 4
현역때 제가 썻던 칸수에요 원래 가군에 성대 모학과를 안정으로 쓰고(진학사 기준...
-
데이뚜 하고싶다 19
힝
-
아좆같다 1
Ppt랑 교재랑 gpt랑 말이 다 다름
-
2025랑 2026이랑 차이가 큰가요?
-
어느 노래를 어느 시기에 오래 들으면 노래를 듣는 것 만으로도 그 시간들의 느낌을...
-
의대남이나 설대남말고 ㅅㅂ
-
이왜진
-
딱 그 몸무게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기립성저혈압 오던데;
-
나는 왜 생명 부분에서 G1기 G2기 S기마다 복제 정상 비정상 가려서 다음단계...
-
빵 은근 존재했음 내 친구 써준 고대 수학과 서강대 인문 떨어지는 성적으로 1칸 예비 2번까지 감
-
끼얏호우 8
숨고에 처음으로 답장 왔다
-
오 드디어 글을!! 16
뱃지달고 오르비 하는게 내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
-
초롱한 눈망울, 도톰한 부리, 섹시댄스가 매력적인 오리비 구속이든 코스프레든 가리지...
-
종강하고 입대 전까지 식비 걱정은 없겠다
-
내 라인은 아직 너무 후한데
-
고학력자들이 많아서 그런가 전 아직 그래도 학벌이 전문직>>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
예2, 본1, 본2의 유급률이 어느정도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선배 분들이나 주변에...
-
조교 자리 구하기 왜이리 힘드냐...
-
아니 건대 ㅅㅂ 4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잖아 진짜 아!!!!!!!!!! 나도 대학 좀 가보자고...
-
고속 0
이거 왜 사1과1로 넣으면 이과,문과 계열에서 대부분 제외[수탐] 로 뜨는거임??
-
놓고 갑시다
-
지방에 있는 대학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제가 인서울은 건동홍?정도 시립대는...
-
https://orbi.kr/00056426935 사실 이건데 04->06으로...
-
많이발전한듯
-
감정은 더 깊어져~~예 아가러텔유디스
-
진짜… 자기관리 하나만 해줘도 평타는 먹고 들어가니깐.. 최대한.. 짝 달라붙는...
-
geunde halsu itneunge eobseo tlqkf
-
제발 모킹버드에서 수학 제작으로 일해보고 싶어요 제발 붙여줘..
-
울학교에 어떤 애가 성대 논술 도중 폰 흘려서 부정행위로 걸렸는데 5
그러니까 성대에서 논술비 돌려줬다 함 얼마나 돌려줬는지는 몰루 모두들 논술보다가...
-
3천원씩 쳐받는거 꼴받네 그래도 진짜 맘에 들때는 사볼까. 아닌가 시작하기전에 사야하나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