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둥 [475242] · 쪽지

2014-03-20 14:23:45
조회수 291

독재생 넋두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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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에서 본 지구.

참으로 보잘것없다. 무수한것들 중 보잘것 없는 하나.
이곳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싸우고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

지구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들은 아마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까?

사실 부질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가 아웅다웅 힘들게 사는것도 말이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상대적인 것처럼. 우리의 부질없음은 누군가에겐 너무나 아름다운 예술이지 않을까?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과학이 우리와 지구의 모든 비밀을 다 밝혀낼 수 있을까? 99.9% 확률로 불가능할 것 같다. 아마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그건 불가능할 거 같다.

삼베로 지은 옷이 일곱근이라는 조주스님의 말처럼 우리는 논리로서 풀지 못하는 문제가 아마 도처에 깔려있을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이곳에 온 이유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무슨 '목적' 혹은 '숙명', 누군가에겐 순명해야할 '어떤 것'이 있기에 우리는 이 곳에 존재하는게 아닐까 추측해보는 것이다.

나도 나조차 내가 무엇인지? 또한 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우주의 비밀을 우리의 논리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처럼 이 '절대진리'에 숙명해야하는 것 아닐까.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권세나 재주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숙명적인 고리이자 풀 지 못하는 문제이다. 슬프지만 또한 아름답다.

우리는 끝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마저도 아름답다.

아마 삶은 나의 존재의미와 삶의 목적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니면 만들어가는 것 일지도. 그 하나만 존재하면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레고처럼 우리도 하나씩 맞추거나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

숙연해지는 밤이다. 욕심과 온갖 욕망이 부질없어 보이는 밤이다.

감히 우리가 어찌 우주의 비밀을 알겠느냐고 적었던 고1때 지구과학 수행평가 답안에 대한 기억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난같았던 그때 생각도 참 신기하게도 지금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난 입시준비생이다. 고3. 한국의 고3이다.

내가 정의했건 남이 정의했건 나는 입시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내가 해야할 일은 오늘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 아름다움에 하나를 보탤 수 있음에 또 다시 감사함을 느끼는 것 아닐까.

누구든 무엇이든 나에게 안된다고 하면 화부터 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지금 느끼고있다. 아니. 모든 것이 풀지 못하는 문제일 것 같다. 적어도 내 인생의 문제에서만이라도 또한 나의 존재와 내 일생 이내의 범위에서도 말이다.

답이 존재하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답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건 문제인 것이다.

그런 문제가 말 그대로 '무수'하다.

마치 너무나 칠흑같은 어둠 속에, 아니 정말 이것이 끝이 보이지않는. 아니 너무나도 작은 그 어둠이 콘크리트마냥 나를 꽉 둘러싸 나를 조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겸손해야한다. 아니 겸손 할 수 밖에 없다.

저 별을 보아라. 우린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이기에' 저 별을 가질수도 만질수도 맛볼수도 사랑할수도 없다. 단지 '인간이기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아무의미없는 하나의 빛일 뿐이다. 그 빛의 존재의 의미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이 정의해준다.

그래 인간은 이 말도안되게 무수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정의해준다.

풀지도 못할 뿐더러 심지어 할 수도 없다. 왜냐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빛나듯 말이다.

뭔지는 잘 몰라도. 내 삶에 감사하고 또 나의 주변 즉. 주변사람과 나의 우주에 감사하는 것.
모든 것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것.

또 부지런히 내 존재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80이 사람의 인생이라하면 끝이 있어서 나의 삶이 아름다운 것 처럼 아름다운 이 삶은 나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부지런히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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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후드티와 낡은 트레이닝 바지 거기에 짧은 머리를 감추려 쓴 회색 비니.

근 이주일의 대부분은 이런 복장으로 다니는 것 같다. 내 독서실과 가까운 곳에서 대학을 다니는 내친구는 나를 보며 스님같다고 했는데 내 자신의 생활도 스님의 삶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생활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은 6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어째서 인지 불안하진 않다. 오히려 정상적으로 잘 해나가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학창시절 8,9등급을 전전하며 몸서리치게 싫었던 과목, 수학이 참 아름다운 학문이란 생각이 들고, 시인들이 적어낸 옥석과도 같은 단어 하나에도 큰 감동을 받고 산다.

우리의 삶은 그리 길지 못하다. 작년에 죽음이란 것에 호기심이 생겨 보았던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저자는 죽음이란 끝이라고 말했다.

영혼과 내세를 부정했던 그 저자는 죽음을 생각해봄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 충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 불세출의 CEO 스티브 잡스가 말한 '죽음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럼 죽음이 우리에게 끝을 의미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한 가지이다.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을 What이 아니라 How로 생각해보자.

아마 우리 삶은 행복을 추구해야한다.

행복의 종류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추구의 방법또한 무한에 이른다.

허나, 내 기준에선 행복은 현재이다.

내 경험 상 과거와 미래에 멈춰있는 자신은 너무 불행했었고 불행할 것이다.

시간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개념이다. 현재라는 관념은 우리의 뇌가 조각조각난 단편의 자극들을 종합해서 만들어 낸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 하나하나의 자극과 이미지가 결국 그것들이야말로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란 결론을 준다.

다시 보면 단어 하나하나 맘에 안들지만 작년 9월의 내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비슷해 작년의 글 하나를 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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