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4-02-22 03: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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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끼리 싸울 필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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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선수끼리 싸울 필요 없죠?"

  SBS 여자해설위원의 일갈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쇼트트랙 1000m 여자 결승전. 1,2등을 점유하며 나란히 달리는 찰나, 2등인 심석희가 치고 달리려 하자 해설위원이 "싸우지 말라"며 나무란다.

  어려서부터 옆의 아이를 밟고 올라서야 과실을 딸 수 있었다. 유치원 때, 먼저 손들고 발표해야 과자를 먹을 수 있었고 중학교 땐, 옆 자리 아이보다 공부를 잘해야 이쁨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한국적인 경쟁에 노출된 덕에 결국 누군가보단 나아야 내 인생이 나아진다는 것 쯤은 뻔한 상식으로 체득케 되었다.

  이제까지 경쟁논리만 가르쳐놓고 경쟁이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스포츠, 그것도 결승전에서 싸우지 말라니. 한 사람의 실언(失言)으로 덮고 가기엔 그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저 해설위원도 쇼트트랙 선수 출신이었고 선수들의 선배였으며 지금 감독들의 후배였다. 저 발언은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 선수단 전체를 관통하는 관행, 압박의 무언가로 느껴졌다.

  3등인 중국선수가 치고 올라오려 할 때, 해설위원은 계속해서 2등인 심석희를 향해 커버하라고 주문했지만 심석희는 다행히 따르지 않았다. 경쟁을 미덕으로 가르쳐놓고 가장 큰 무대에서 경쟁의 가장 큰 적인 관용과 양보를 강요하다니. 선수 출신이라면, 금메달과 은메달의 명예/금전적 가치의 차이가 결코 적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알 수 있는 요량은 없지만, 초반 1등으로 달리다 아무 저항없이 박승희에게 길을 터준 심석희에겐 뭔가의 아쉬움이 남았을 거라 짐작이 된다. 설령 둘이 엉겨붙어 넘어지더라도, 처음부터 경쟁을 가르쳤다면 끝까지 본인들 신념과 기량 하에 최선을 다해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국이야 누구든 순서대로 메달을 따면 좋겠지만 그들에겐 서로가 남남일 뿐이고 결국 수험생이 대학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평가받는 것처럼 그들 또한 메달로 평가받을 뿐이다.

  학생 때부터 마치 쉼없이 달릴 수밖에 없는 경주마로 조련해놓고 이제 뛰려 하니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보라며 주저앉히는 우리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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