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평 한국사 해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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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 (정답 ⑤번)
[문제풀이]
그림은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 토기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가락바퀴를 사용하여 실을 뽑아 옷을 만들어 입었다.
[오답풀이]
①, ③, ④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이다.
② 철기 시대의 생활상이다.
2. 조광조의 개혁 정책 (정답 ①번)
[문제풀이]
자료에서 제시한 인물은 조선 중종 때의 대표적 유학자인 조광조이다. 조광조는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다가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제거되었다.
[오답풀이]
② 율곡 이이에 대한 설명이다.
③ 조광조는 중종 때의 사람이다.
④, ⑤ 훈구파에 대한 설명이다.
3. 영조와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 (정답 ③번)
[문제풀이]
자료에 제시된 인물은 (가) 영조, (나) 흥선대원군이다. 영조와 흥선대원군은 각각 균역법과 호포제를 실시, 백성들의 군포 부담을 종전 2필에서 1필로 줄여주고(균역법), 양반에게도 호포를 징수하여(호포제) 백성들의 군포 부담을 경감시켰다.
[오답풀이]
① 영조 때의 일이다.
② 정조 때의 일이다.
④ 영조 때의 일이다. 영조는 이조전랑의 후임자 천거 권한(전랑천대법)과 3사의 관리를 선 발하던 관행(통청권)을 혁파하였다.
⑤ 흥선대원군 때의 일이다.
4. 웅진 도읍 시대의 백제 (정답 ③번)
[문제풀이]
그림에서 (가)는 웅진(공주)을 가리킨다. 백제는 고구려의 남하정책으로 장수왕에 의해 개로왕(455~475)이 죽임을 당하고 한강 유역을 상실하자, 그 뒤를 이은 문주왕(475~477) 때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겼다. 그리고 성왕(523~554) 때 다시 도읍을 사비(부여)로 옮겼다. 웅진 도읍 시절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의 소지왕이 2차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항하였다.
[오답풀이]
① 신라는 진덕여왕 때인 648년 당과 나당동맹을 맺고 660년 백제를 공격하였다.
②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400년 신라를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④ 백제 성왕은 554년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패해 죽었다.
⑤ 근초고왕은 371년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5. 비변사의 기능 (정답 ①번)
[문제풀이]
자료에 제시된 ‘이 기구’는 비변사를 가리킨다. 중종 때 삼포왜란을 계기로 창설된 비변사는 초기에는 임시기구였으나 명종 때 을묘왜란을 거치며 상설기구화되고, 임진왜란 이후 기능이 확대되어 기존의 군사문제 뿐만 아니라 외교, 재정, 사회, 인사문제 등 국정 전반을 관장하였다. 구성원 또한 갈수록 확대되었다. 비변사가 정국을 주도하고 의정부와 6조의 행정 체계가 유명무실화되자 집권 붕당은 비변사의 고위직을 독점하여 정치를 주도해나갔다.
[오답풀이]
ㄷ. 권력이 소수 가문에 집중된 19세기 세도정치기에 비변사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ㄹ. 흥선대원군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군사와 정치를 분리하기 위해 비변사를 혁파하고 삼군부를 부활시켜 정무는 의정부, 군무는 삼군부가 담당하게 하였다.
6. 왕권 강화를 위한 인사 제도 개혁 (정답 ①번)
[문제풀이]
자료에서 (가)에서 쌍기의 건의로 광종은 과거제를 실시하였다. 과거제를 통하여 유학을 배운 신진 인사를 등용하여 호족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나)에서 정방은 무신집권기 최우가 만든 사설기구로 이것을 통해 인사권을 장악했다. 무신집권기가 끝난 이후 국가기관으로 편입되었으나 이번에는 권문세족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에 공민왕은 왕권을 제약하고 신진사대부의 등용을 억제하고 있던 정방을 혁파하였다.
[오답풀이]
② (가)는 호족, (나)는 권문세족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③ 조세 제도와는 관계없다.
④ 붕당의 개념은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다.
⑤ (가)에는 맞으나 (나)에 해당되지 않는다.
7. 위정척사운동 (정답 ④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에서 (가)는 최익현의 왜양일체론(지부복궐척화의소), (나)는 이만손 등이 중심이 된 영남만인소다. 1876년 최익현은 일본과의 통상(강화도 조약)이 논의되자 상소를 올려 통상의 불가함을 주장했다. 1880년 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을 가지고 들어와 고종에게 바쳤다. 이 책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정책을 담았는데,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 일본, 중국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유포되자 1881년 이만손을 비롯한 영남 유생 1만여 명은 상소를 올려 의 내용을 비판하고 김홍집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오답풀이]
① 보빙사는 1883년에 파견되었다.
② 아관 파천은 1896년에 단행되었다.
③ 중립화론은 갑신정변 이후에 제기되었다.
⑤ 거문도는 1885년 영국군에 점령되었다.
8. 갑신정변 (정답 ⑤번)
[문제풀이]
(가) 인물은 김옥균이다.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조선정부가 재정부족에 시달리자 집권세력인 민씨 일파는 당오전 주조를, 김옥균은 일본으로부터 300만원의 차관을 도입하기를 주장하였다. 고종이 양측 모두 승인하였고, 김옥균은 국채 모집 위임장을 갖고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민씨 일파의 방해공작으로 국채 도입은 실패로 끝나게 되고, 조선에서의 좁아진 입지와 첨예해진 민씨 세력과의 갈등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개혁을 성사시킬 수 없다고 판단,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한편 급진개화파 세력은 동양의 낡은 전통을 버리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의 자강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김옥균은 1882년 3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그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오답풀이]
① 제물포 조약 체결의 배경이 된 사건은 임오군란이다.
② 독립협회의 활동과 관련되었다.
③ 동학농민운동 때의 일이다.
④ 통리기무아문은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한 뒤 대와관계에 대한 대응과 신식무기 수입 및 제조 등의 이유로 1880년 설치되었다.
9. 동학농민운동 (정답 ②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는 동학농민군이 1차 봉기 당시 관군과 전주화약을 맺고 스스로 해산하면서 정부에 제시하였던 폐정 개혁 12개조이다. 2차 봉기 이후 일본군과 관군 연합부대에 패해 동학농민운동은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개혁 요구는 이후 갑오개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고 대신 보통시험과 특별시험이 도입돼 관리를 임용하였고, 탁지아문으로 재정을 일원화시키면서 지방재정의 자율적 조달이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지방 관아에서는 여러 명목을 붙여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던 세금을 걷지 못하게 되었다.
[오답풀이]
ㄴ. 동학농민운동과는 관계없다.
ㄹ. 왕실과 정부를 분리하는 것은 왕실의 권위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동학농민운동의 성격과 배치된다. 동학농민군은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어 지러워진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을 뿐, 왕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10. 이승만 (정답 ②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에서 (가)에서 만민공동회 활동으로 정부에 붙잡힌 이승만은 탈옥을 기도하다 실패해 1899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나)에서 1915년 이후 이승만이 중심이 된 대한인 국민회는 1919년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청원서를 보냈다. 권업회의 이상설, 이동휘 등은 보다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조직을 갖추기로 하고 1914년 대한광복군 정부를 조직하였다.
[오답풀이]
①, ③ 1923년의 일이다.
④ 1926년의 일이다.
⑤ 1898년의 일이다.
11.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일제에 의한 수탈 (정답 ②번)
[문제풀이]
일제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과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대대적인 약탈을 자행했다. 1910년에서 1918,년에 걸쳐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은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여 근대적 토지소유권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실시되었지만 실상은 짧은 신고기한과 까다롭고 복잡한 신고 절차로 인해 농민들이 토지를 빼앗기는 사례가 많았다. 오직 소수의 지주들만이 이 사업으로 토지소유권을 획득하였으며, 자작농과 자소작농 등 소농들은 대부분 몰락하여 소작농이 되거나 화전민이 되었다.
[오답풀이]
① 총독부는 빼앗은 토지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헐값이 불하했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그 토지를 다시 농업 이민을 온 일본인에게 싼값에 양도하였다.
③, 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으로 부담이 가중돼 생존이 어려워진 농민 중 일부는 국외로 이주하기도 하고, 소작 쟁의를 통해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④ 산미증식계획으로 농민들에게 부담이 가해진 반면 총독부의 비호를 받은 토지 회사와 대지주들은 농장을 넓혀나갔다. 그 결과 일부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소작농이 되었다.
12. 충칭 임시정부 (정답 ①번)
[문제풀이]
임시정부는 1940년 중국 국민당을 따라 충칭으로 본거지를 옮긴 후 김구를 중심으로 당, 정, 군을 쇄신했다.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고, 주석 중심제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민족 혁명당 등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모아 항일 투쟁의 역량을 강화하고, 중국, 미국 등 연합국으로부터 임시정부를 승인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오답풀이]
② 1935년의 일이다.
③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는 1932년의 일로, 이후 국민당 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받게 되었으나 승인을 받지는 못하였다.
④ 조선의용대 일부 대원이 반대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창설한 것은 한국 광복군에 합 류하는 일이었다.
⑤ 1930년대 초반의 일이다.
13. 대한자강회 (정답 ⑤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는 대한자강회가 발표한 취지문이다. 대한자강회는 1905년 조직된 헌정연구회를 확대 및 개편하여 1906년 3월 창립되었다. 전국에 30여 개의 지회와 2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국권 회복을 목표로 간행, 강연회 개최 등 교육, 언론 활동과 식산흥업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고종 강제 퇴위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1907년 8월 보안법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한편 화폐정리사업과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에 의해 추진된 각종 시설 확충 사업으로 인해 대한제국 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여 해결하였다. 이에 차관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 보상 운동이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① 1909년의 일이다.
② 1905년의 일이다.
③ 1904년의 일이다.
④ 1895년의 일이다.
14. 조선어학회 사건 (정답 ④번)
[문제풀이]
1921년 창립된 조선어 연구회는 1931년 이윤재, 이극로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로 확대, 개편되고, 기관지로 을 발행하였다. 조선어학회는 조선어 사전 편찬회를 결성하고 1933년 과 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편찬을 시도하였으나, 1942년 일제에 의한 탄압으로(조선어학회 사건) 편찬은 중단되었다.
[오답풀이]
① 진단학보는 1934년 조직된 진단학회의 학보지이다.
② 한글맞춤법통일안은 1933년 발표되었다.
③ 문자보급운동은 1929년 시작되어 30년대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⑤ 잡지 은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에서 1926년 창간하였다.
15. 4,19 혁명 (정답 ①번)
[문제풀이]
3월 15일 치러진 4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선거 당일,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마산에서는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월 11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한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4월 18일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대학생들이 정치 깡패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다음날 19일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비상 계엄령과 군대 투입, 이기붕의 사퇴와 이승만의 자유당 총재직 사임으로도 시위는 그쳐질 줄 몰랐고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적에서 하야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후 들어선 허정 과도 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로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뼈대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다.
[오답풀이]
②, ⑤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때의 일이다.
③ 1960년 5.16 쿠테타와 1979년 12.12 쿠테타 때의 일이다.
④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말한다.
16. 청산리 전투 (정답 ④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에서 ‘우리 부대’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를 가리킨다. 1911년 북간도 왕청현에서 대종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중광단은 1919년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 북로군정서로 개편하였다. 1920년 10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군 등의 독립군 부대가 백두산 서쪽으로 향하는 길목인 화룡현 청산리에 집결하였다. 이들 부대는 각각 백운평 골짜기와 어랑촌에서 일본군을 무찌르는 대승을 거두었고, 이후 벌어진 10여 차례의 전투에서도 크게 승리하였다.
[오답풀이]
① 1930년대 초 한국 독립군과 조선 혁명군을 말한다.
② 북만주 일대에서 활약한 지청천의 한국 독립군을 말한다.
③ 남만주 일대에서 활약한 양세봉의 조선 혁명군을 말한다.
⑤ 조선의용대(1938)를 말한다.
17.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정답 ②번)
[문제풀이]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에서 한반도에 민주적인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미소 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며, 임시정부와 협의를 거쳐 미국, 영국, 중국, 소련의 4개국이 한반도에 대해 최고 5년 기한으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946년 3월 미국과 소련은 모스크바 회의 결정을 실천하기 위해 공동위원회를 개최하였으나 양측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휴회, 1947년 5월 2차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이마저도 결렬되었다.
[오답풀이]
① 한국 민주당은 모스크가 3국 외상 회의가 열리기 전 결성되었다.
③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구성된 것은 좌우합작위원회다.
④ 남한 단독 총선거의 원인은 소련이 UN 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⑤ 조선인민공화국은 건준 내 좌익세력이 미군의 남한 진주에 앞서 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해 선포한 것이다.
18. 6.25 전쟁 (정답 ④번)
[문제풀이]
제시된 자료에서 맥아더는 중국군 개입으로 유엔군이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밀려 내려오자 확전을 요구하였다. 그는 1951년 3월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유엔군의 군사행동을 중국의 연안과 내륙으로 넓힐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트루먼 정부는 더 이상의 확전을 원하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의 뜻과 배치되는 맥아더의 돌발행동을 용납할 용의도 없었다. 결국 4월 11일 맥아더는 미 극동군사령관 및 유엔군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전쟁은 지리멸렬한 소모전을 반복하다 7월 10일 유엔주재 소련대표 밀라크의 제의로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다.
[오답풀이]
① 평양 진격은 1950년 10월 19일의 일이다.
② 대전 함락은 1950년 7월 20일의 일이다.
③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의 일이다.
⑤ 6.25 전쟁 발발 직후의 일이다.
19. 전두환 정부 당시 경제상황 (정답 ②번)
[문제풀이]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긴축 정책과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라는 이른바 3저 호황이라는 대외 여건의 개선에 힘입어 매년 10% 이상의 경제 성장을 기록하면서 1986년 처음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었다.
[오답풀이]
①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③ 이승만 정부 때의 일이다.
④ 박정희 정부 초기 때의 일이다.
⑤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다.
20. 6.15 남북 공동 선언 (정답 ②번)
[문제풀이]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6.15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6.15 공동 선언 이후 남북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연결 복원, 이상가족 정례 상봉, 개성 공단 설치 등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남북 교류가 크게 확대되었다.
[오답풀이]
ㄴ. 금강산 관광은 1998년 시작되었다.
ㄹ. 남북 조절위원회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이후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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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 문제 ㄷㄷ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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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의 기간이 겹치네요 ㅋㅋㅋㅋㅋ와
6개월 시간 겹치는 것도 그렇고,
대종교의 창시년도까지 알고 있었다면 맞힐 수 있는 문제였죠.
제시문을 통해 시대를 던져주고 선지에서 사회, 문화사 연도를 묻는 문제는 이전 한국근현대사에서도 흔히 출제되는 패턴인데,
이건 솔직히 연도를 외우지 않고는 답이 없거든요.
정치사나 경제사 같은 건 굵직하게 흐름 잡아서 전후 관계 이해하고 넘어가도 크게 무리가 없지만,
사회사나 문화사는 흐름 잡기도 어렵고 흐름만으로도 해결되는 게 아니라서...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창시연도 같은 건 외우고 넘어가는 게 속 편합니다. ㅎ
감사합니다
저만 어려웠나요 ㄷㄷ
9, 10, 13번 문제 제외하면 대체로 평이했다고 봅니다.
저야 시험장에서 직접 문제를 푼 입장이 아니라 체감 난이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전 11번 임야 조사령에서 임야의 화전민들도 농토를 뺐겼다고 생각해서 2번 패스하고 산미증식계획은 간접적인 영향아닌가해서 고민 했는데 틀렸네요 ㅠ
너무 어렵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1910~1930년대 표 던져 주고 농가 어쩌고 묻는 건 백이면 백 토지조사사업 아니면 산미증식계획이에요.
저도 그거 알았는데 갑자기 화전민 생각이ㅜㅜ
8번 갑신정변 문제 갑신정변인걸 알았는데 고민없이 제물포조약을 골랐네요ㅋㅋ 이런 말도안되는 경운ㄴ 어떻게 대비해야하죠.. 이런 약간 사고회로가 잠시 미친것 같은 현상이 특히 시험이 어려운경우에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요ㅠㅠㅠㅠㅠ 개념을 훨씬 더 익숙하게 돌리고 문제 많이 풀어보는ㄱ ㅓㅅ밖엔 없겟죠...ㅠㅠㅠ 저 같은 경우엔 한국사 정말 어려웠어요. 6평만 생각하고 한국사 실력은 어느정도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느넫 완전 부족하다는걸 느꼈네요
기계적으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면 됩니다.
그러려면 알고 계신대로 개념서를 반복해서 보고 문제를 많이 푸는 수밖엔 없죠.
저는 백지복습을 추천하고 싶은데,
흰 종이에 한국사의 주요개념을 한 번 쭉 써내려가 보세요.
이게 막힘없이 1863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지면,
한국사 공부 땡입니다.
해설지 잘 쓰셧으니 전 할게 없네요.. ㅠ손가락이나 빨아야할듯;;
왜요... 해설지 두 개 있으면 좋죠. ㅎ
님도 써보세요. 제 거랑 비교도 좀 하고 싶고...
전 이번에 첨이라 이게 맞게 한 건지도 잘... ㅋ
오타 있네요
17번 선지 4번 입북 -> 입국
19번 선지 3번 이승만 4번 박정희 5번 김영삼 밀려쓰신것 같아서 올려요
태클거는건아니구요 덕분에 오답정리 쉽게했네요 감사합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그리고 입북이란 표현은 북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에요. 요건 오타 아닙니다. ㅎ
19번 선지는 수정하겠습니다.
강민성 선생님께서는 1번에 3번 선지가 초기철기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판단해야하죠..ㅠㅠ
거푸집은 청동기 후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데(청동기와 철기를 같이 쓰던 시대) 지금 찾아보니 교과서에는 확실하게 '철기'라고 못 박아놨네요.
강민성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ㅠㅠ
13번 같은건 연도 모르면 아예 못푼다고 봐도 될까요??ㄷㄷㄷ
아예 못 풀지는 않는데, 좀 어렵죠.
9평 국사 50이긴한데
뭔가 출제의 포인트가 달라졌다해야되나 문제를 묻는법이 바뀌었다 해야되나
풀긴 푸는데 뭔가 이상하고 오묘한느낌들면서 풀었네요
그런느낌 드신분 없으신가요?
4번문제 선지 3번 오답해설에서
관산성전투에서 전사한건
개로왕이 아니라 성왕 아닌가요...?
헐...
지적 감사합니다. ㅠㅠ
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