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생 [287204] · MS 2009 · 쪽지

2013-06-15 00: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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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생]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 나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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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르비 학원 강사 정규영입니다.

 

많은 학생들의 쪽지를 받으면서, 또 오르비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학생들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절실함이 오래 전 제 수험 생활을 많이 생각나게 하더군요.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여러분과 같은 입시를 조금 먼저 겪었던 선배로서 제 경험을 말해보고자 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제 성적은 항상 반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3 내내 봤던 모든 모의고사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았던 수능 성적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긴 힘든 성적이었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00점 만점 기준으로 300점을 조금 넘는 점수였어요

대학 진학을 위해 저를 상담해주시던 담임 선생님은 지금 점수는 사실 니 실력보다 높은 점수다, 감사해하며 대학 가라.’ 하시며 경기도권 몇몇 대학을 추천해주셨어요. 이 대학은 취직이 잘되고, 이 대학은 발전 가능성이 있고 이 대학은 또 어떻고..

재수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수능을 세 번봐도 니 점수는 지금 점수보다 높지 않을 거라 말씀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넉넉하지 못한 형편을 알면서도 1년만 기회를 달라며 부모님께 사정할 때, 제 마음의 팔할은 오기였던 것 같습니다.

 

오기로 시작한 재수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 실력은 너무나도 형편없어 수학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전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현역 때 수능을 이과로 봤던지라, 사탐 같은 경우는 정말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 당시 저는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도 못 만나고, 좋아하던 게임도 못하고, 영화도 못 보고, 연애도 못 하고,

공부만 해야 했으니까요. 근데요, 지금은 그 때가 그리워요. 무엇인가에 몰입했던 기억이요.

 

다 커버린

지금도 그 막대사탕이

그리운건. 그 단맛 때문만이

아니다. 난 정말이지

가끔은 어릴 때처럼

아무 생각없이 무언가에

함몰되고 싶다.

 

광수생각이라는, 예전에 모 신문사에서 연재했던 만화에 있던 내용이에요. 제 수험생활이 사탕처럼 단 맛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에 몰입했던 그 시절이, 전 지금도 그립습니다.

어두컴컴한 독서실 내 책상, 까맣게 된 정석 책,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된 졸음과의 싸움(전 졸려서 울었던 적도 있어요.), 매일하던 자책, 독서실 책상 위에 붙여 놓았던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쓴 초심이란 글자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하지만 그 땐 절실했던)

 

이 모든 것들이 참 그립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하지 마세요.

 

한 가지를 위해 나머지 것들을 잠시 잊어야 한다는 것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몰입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나, 아무 때나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여러분들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죠.

 

푸쉬킨의 시 중 이런 구절이 있죠.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지리니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지금의 고통은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그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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