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영역학습의 상반된 견해_혼동하지 않도록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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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근 오르비에 올라온 두 편의 칼럼을 읽고 이에 대한 생각을 올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두 칼럼은 언어영역에 관한 접근법에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있어왔던 서로 다른 견해를 다시 보여주고 있어서 서로 다른 충고를 두고 학생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서로 다른 견해란, 언어영역을 공부함에 있어 원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과 원리보다는 먼저 부단히 읽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저는 언어영역을 약간 가르치고 있고,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언어는 말과 글 그리고 이해와 산출로 나눕니다. 말의 산출(발화)와 이해(듣기), 글의 산출(쓰기)와 이해(읽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가운데 읽기를 공부합니다. 그래서 글을 어떻게 읽는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읽을 수 있을까를 공부합니다. 이런 주제는 국어교육학, 국문학, 언어학이 아닌 언어심리학에서 다룹니다. 저는 언어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언어영역은 원리를 쫓아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한 지문을 긴 시간동안 붙잡고 공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점수를 올려주지 못하는 방법이다...중요한 것은 글에서 구조를 파악하고 글의 핵심 내용만 파악하면 된다....
마지막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전체의 구조를 잡고,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그것을 하고 나서도 계속 지문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체의 구조와 핵심 내용을 파악했고 자신의 파악이 올바른 것임을 알았고, 여러 지문을 통해서 자신은 구조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다면 위 말대로 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능력이 있든 없든 실전에서는 구조와 핵심을 파악하여 전체 내용을 중요 내용과 주변 내용으로 정리해 내려고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조와 핵심을 파악할 수 없으면 또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해낼 수 있는 학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요한 사람은 일단은 시간을 들여서 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 신속하게,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글 이해 과정에서 사실적 이해를 토대로 추론적 이해를 하는데, 원래 추론이라는 것은 그 종류가 열 가지가 넘는 매우 다양한 갖가지의 것들입니다. (주제를 파악하는 것도 주제 추론이라는 추론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지문은 어디서 어떤 추론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지문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서 그래 여기서는 00추론을 해야 하겠군!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추론을 어떻게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능숙해지면 추론을 할 수 있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추론하게 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추론해야 할 점을 발견하고자 애써야 하고,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문을 오래도록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다는 것은 추론을 시도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은 학생의 글 읽는 능력의 한계(상한선)를 높여줍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깊이 읽을 수 있는가, 얼마나 어려운 글을 읽어낼 수 있는가를 향상시킵니다. 반면 제한된 시간 안에 읽는 연습을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정도 이상은 읽을 수 있다는, 능력의 하한선을 높여줍니다. 능숙해지면 빨리 추론할 수 있고, 어떻게 추론해야 할이지 과정이 간결해집니다.
그럼 왜 위와 같은 말을 했을까요? 제가 한 말이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가장 핵심적인 능력, 즉 구조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다보면 글의 내용 외에 내가 왜 이 글을 읽는가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번 지문을 읽을 때 변함없는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구조와 핵심의 파악입니다. 추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인데 여기서는 과정보다는 결과와 목표에 초점을 맞춰 조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각 지문에서 얻어야 할 것은 구조와 핵심뿐이니 그것의 파악에만 힘을 다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나한테 도움이 되는 것이 맞나?’라는 비생산적인 의심을 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도 했나 봅니다.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긴 시간을 들여 봤자 모두 헛수고인 셈이지요.
저는 다음과 같이 조언하겠습니다.
1. 지문을 봐도 봐도 알 수 없는 수준
그래도 삼십분 정도 들여다 봅니다. 처음이나 30분 후나 똑같이 백지 상태여서 마침내 아무 생각없이 올바른 요약(해설서 또는 지도)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삼십분 동안 지문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기록합니다. 나는 이 글이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다가 저런 말을 하고 그래서 결국은 이런 말로 끝을 맺고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기록합니다. 그런 다음 정확한 지문분석과 비교하여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지문분석을 보며 어떻게 읽어야 이렇게 읽을 수 있을지를 연구합니다.
올바른 방향을 찾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미로에서 길을 찾아 나가는 사람처럼 어떤 원칙이나 원리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택시운전기사님들은 머릿속에 지도나 네비게이션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쥐도 미로를 계속 오가게 하면 머릿속에 미로 지도를 그려냅니다. 사람은 더 뛰어나니까 미로보다 더 복잡한 지문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쥐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미로의 길 찾기를 연습한다고 해도 제대로 볼 시간을 주지 않으면 한 번 제대로 연습한 것보다 낫지 않습니다.
2.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지문을 분석하면 주제와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하는 수준
더 정확히 주제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연습하기를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울러 제한된 시간 안에 해내는 연습을 시작할 때입니다. 이때 시간은 바로 2분이 아니라 지문을 읽는 시간을 7분 정도로 제한해서 하고 점점 줄여 나가면 됩니다. 시간을 제한하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내용을 다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제만 생각하게 됩니다. 즉, 주제를 추론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하지만 1의 상태에서는 주제만 생각한다고 해서 주제를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1의 연습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분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원리보다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너무 ‘원리’를 쫓아서는 안된다....그것은 ‘상업적 마케팅’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원리’를 찾는 학생들의...‘쉽고 편한 지름길을 통해 공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저는 이 글이 마음에 듭니다. 상업적 마케팅과 편하고자 하는 욕망. 지문 독해 원리를 설명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원리가 무엇인가’보다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아래에서 보듯 일단 열심히 읽는 것은 독해의 첫 번째 원리이지 유일한 원리는 아닌 것입니다. 나머지 원리는 차차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해 안 되면 또 읽고, 자꾸 읽고, 계속 읽으면, 끈질기게 읽으면 이해된다. 그게 내가 아는 가장 중요한 독해의 첫 번째 원리이다.
그런데 앞서 원리를 강조하는 견해에 관해 저는 지문을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읽은 후 ‘정확한 지문분석’과 비교하여 평가해 보라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냥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냥 열심히 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원리는 실행했으니 다른 원리는 덜 실행하더라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진전은 있지만 현재 읽기가 완전하지 않다면 아무리 해도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발견하고서 수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점을 두 번째 분이 말씀하지 않으신 바는 아니나 혹 학생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 제가 짚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지적한 ‘쉽게 가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정확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어려운 길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냥 열심히 하고서 내가 이만큼 했으니 성과가 있겠지 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과 학생과 문과 학생은 읽기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인문, 예술, 사회 지문과 과학, 기술 지문을 각각 다르게 읽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읽습니다. 이과 학생은 과학기술지문을 잘 읽는 것은 그쪽을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학문영역에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글 구조와 유사하고, 그래서 이해하는 방식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과 학생은 이런 읽기에 익숙하고 그런 방식으로 인문예술 지문마저 읽으려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문과 학생은 반대입니다. 그런데 양쪽의 학생들이 마냥 읽으려 한다면 자기 식대로 읽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마침내 글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르거나 끝까지 내용영역별 읽기를 터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문과 학생은 어떻게 과학기술 지문을 읽기를 연습해야 하는지, 이과 학생은 어떻게 인문예술 지문을 연습해야 하는지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문과 학생과 이과 학생의 읽기의 차이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글 자체를 읽는 것(사실적 이해)을 블록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문과 학생은 블록이 다양한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블록이 어떤 모양인지, 그래서 어떤 다른 블록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치 테트리스와 같습니다. 인문예술 지문은 매우 많은 블록이 쌓인 테트리스와 같습니다. 블록과 블록이 어떻게 결합하는가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개념의 추상화, 일반화와 같은 것입니다.
반면 이과 학생의 블록은 그냥 벽돌입니다. 벽돌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단 붉은 벽돌은 계속 같은 색 같은 모양입니다. 그 외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은 또 그냥 그 재질, 그 모양이지요. 그래서 쌓기가 쉽습니다. 쌓아서 어떤 모양을 만들면 어떤 모양이 나올지 상상하기가 쉽습니다. 과학기술 지문은 단순한 개념, 원리를 통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나 작동하는 상(mental model)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과 학생이 기술지문을 보면 표현의 의미를 자꾸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그것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백한 개념이 다른 조건과 결합하여 그려내는 상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과 학생은 표현의 의미를 단순하게 지나치지 말고 되짚어 봐야 합니다. 서로 끼워맞출 수 없는 테트리스 블록을 반듯한 벽돌로 생각하고 쌓으려 하니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분이 말씀하신 ‘마냥 열심히 읽는 것’은 열심히 노를 젓는 것과 같습니다. 첫 번째 분이 말씀한 ‘읽기 원리를 배우는 것’은 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저어야 나아가되, 방향이 정확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어가 어려운 여우와 장미를 돌보는
psycholinguist, 안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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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평소에 언어공부하며 궁금해했던게
말끔히 해소된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쉬운길을 찾고싶어하는 심리.. 정확하시네요. 덕분에 다시한번 되새기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 그건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오르비에 글 올린 다른 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갑입니다. 역시 전공자는 다르군요.
개편되고 처음 올린 글이라 창을 열어놓고 있는데 이렇게 평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사실 저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해주셨습니다. 이 말씀과 비슷한 말은 제가 수업할때 가장 먼저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저는 '원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과 '부단히 읽어야 한다는 입장'을 '연역법적 관점'과 '귀납법적 관점'으로 설명합니다. 예전에 제가 수험생 시절에는 귀납법에 속했으나 현재는 연역법의 입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을 스스로 분석해보면 수험생과 강사의 입장차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도 지적해주셨던 바와 같이 '연역법'공부가 상업적 마케팅으로 이용되기 싶기 때문에 상업적 마케팅에 의해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수험생때는 귀납법을 그렇지 않게 된 강사때는 연역법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왕 논의가 제기되었으니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를 정리하여 글로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공간에서 견해를 교환하고 좋은 가르침을 지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좋은 글을 많이 발견합니다.
문과계열 글은, 표현의 "의미"와 "문장간의 관계"에 주의하고, 이과계열의 글은 머릿속으로 상을 그리며 읽어야 하나요?
네 주안점은 그것입니다. 하지만 문과계열 글도 개념적 상을 그리고(논리적 연관성이겠죠) 이과계열 글에서 표현의 관계를 주의해야 합니다. 관계를 알아야 서로 연결해서 상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계열'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은 좋은 이해방식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글을 잘 정리해 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했네요
언어 공부방향을 고민하고 있는데 도움이 됐어요. 언급하신 두 편의 칼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링크인 것 같은데 이렇게 뜹니다.
오르비의 게시판 지침에 맞지 않은 것 같아 두 편의 칼럼을 명시하거나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제 카페에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