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이제 더이상 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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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있는 문호 빅토르 위고의 집은 역사적이다. 찰스 디킨스(소설가), 프란츠 리스트(피아니스트) 등이 모여 담소를 나눴다. 조르쥬 상드(쇼팽의 연인), 니콜로 파가니니(악마의 재능), 알렉상드르 뒤마(삼총사) 등 유명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집이 한국법 기준 범죄의 현장일 수 있다.
위고는 불륜을 즐겼다. 주인공은 당대의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 위고에게는 부인이 있었지만 있기만 했다. 위고의 열정은 대단해서 집 안에 있는 작은 비밀 계단으로 불륜녀들을 안내했고, 원없이 즐겼다. 위고의 걸작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역시 드루에에 대한 영감에서 시작됐다.
당대의 문장가 위고는 그 자신이 훌륭한 필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배우기에 인색하지 않았다. 다만 방향이 엉뚱할 뿐. 위고는 역시 엄청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드루에로부터 연애편지를 2만여 통 넘게 받았는데 여기에서 좋은 문장을 베껴 다른 여자에게 쓰는 연애편지에 활용했다(!) 위고가 불륜을 즐겼다 하여 드루에만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위고는 화가 프랑수아 비아르의 부인을 유혹해 성관계를 즐기다가 간통 혐의로 고소되어 체포되기까지 했다. 문호의 체포에 프랑스가 충격받았고 루이 필립 왕은 위고에게 잠시 떠나있을 것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위고의 불륜 행위는 왕의 권유에도 멈출 줄을 몰랐다.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귀족원에 출근한 뒤 저녁은 비아르 부인의 집에서, 야식은 드루에와 함께 했다. 집의 비밀계단은 위고가 70세를 넘겼을 때에도 계속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 위고와 같은 자가 이런 짓을 한다면 과연 처벌받을까.
제319조(주거침입)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결론은 처벌받는다. 물론 간통은 아니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효력이 상실됐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불륜을 목적으로 한 출입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구성요건을 담은 형법조항은 그 조항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이 존재하는데 주거침입의 경우 '사실상의 평온'이 보호법익이다(본 칼럼 제2편 친구 초대로 놀러간 기숙사 구경이 주거침입죄? 참조). 불륜을 위해 상간녀의 집에 들어갔다면 상간녀의 승낙은 있었을지언정 그 남편의 평온을 해하였으므로 주거침입죄로 처벌 가능하다.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이 사실상 평온이라면, 그 집에 없는 자는 뭘 누릴 여지가 없으므로 주거침입죄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 일부 학계의 의견이다. 하지만 법원은 그렇게 넘어가기엔 불륜남, 불륜녀가 괘씸했던 모양이다. 남편(부인)이 일시 부재중일지라도 남편(부인)의 주거에 대한 지배관리관계는 여전히 존속한다는 것.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면서 법리를 창출하여 국민의 법감정을 달래는 시도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렇게 간통죄가 폐지되었어도 불륜이 죄가 될 수 있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간통죄도 폐지됐으니 주거침입만 조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 수도 있으나 이또한 곤란하다. 간통을 상대방 배우자가 알게 되면 위자료 청구를 당할 수 있다. 위자료 액수도 액수일 뿐더러 이러한 내용의 소장 송달 등으로 가족, 회사 동료들에게 알려질까봐 더욱 두려워하는 경우를 실무상 더 많이 본다. 불륜이 합법화된 것이 아니라 간통죄만 비범죄화된 것이다. 연결된 다른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조차 당신에게는 없기를.
사족: 실제 위고의 사례에서 위고의 집에 드나든 불륜녀들은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부인 아델 푸셰는 위고의 불륜을 알고도 묵인하였다는 정황 때문. 아델 또한 위고의 친구인 유명 평론가 샤를 생트뵈브와 외도를 했다. 위고의 힘든 망명생활을 곁에서 지켜준 것은 당연히 불륜녀 드루에. 정조(貞操) 관념으로 참획(斬獲)되기에는 이들이 너무 자유로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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